100여 년 전, 로버트 플래허티의 <북극의 나누크>는 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뉴잇 족의 고달픈 삶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그로부터 백 년도 더 지난 지금, 영화 <아가>는 다시 한번 지구상의 마지막 위대한 사냥꾼인 나누크 가족을 다룬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영화의 제목은 아버지 ‘나누크’가 아닌 딸 ‘아가’이다. 순록을 숭배하며 살아온 부모와 달리, 아가는 광산 노동자가 되어 있다. 죽어가는 아내의 꿈은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부족의 운명에 대한 예지몽이자, 그들이 더 이상 자식들과 같은 세계에 속할 수 없게 된 서글픈 현실에 대한 계시몽이다. (맹수진)

* 09.07 (토) / 12:30 / 알프스 시네마 1 / 게스트와의 만남 / 시메온 벤트시슬라포프(각본)  

입과 표정만으로 신기한 악기 소리를 내는 전통의상의 여인이 들머리에서 관심을 북돋운다.

지구의 지붕이라 불리는 고산지대에 위치한 툰드라, 하늘과 땅이 구분되지 않는 동토의 설원에 전통방식으로 어로와 수렵을 하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노부부의 게르가 보인다.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척박한 땅에서 부부가 오롯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엔 어떤 갈등 때문에 떠난 딸(아가)이 자리잡고 있다. 1시간가량 보여지는 설원에서의 삶은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로 어렵다.

다리에 난 상처를 치료하며 남편(모하)이 하는 말-‘다리는 가족 같아! 서로 있어야 쓸모가 있지’ 꼭 두사람 얘기 같다. 자연은 이들 부부에게 혹독한 현실이지만 둘이서 슬기롭게 해결해 간다. 이발도 해주고 물끄러미 남편을 바라보는 모습이 정겹고 흐뭇하다.

밤새 태풍과 사투를 벌이고 난 다음날 꿈 이야기를 하는 아내, 사냥길에 죽은 동물의 무덤을 만들어 주면서 부르는 노래는 아내의 죽음을 예고하는 듯 슬프다. 아내는 딸 방한모를 완성하면 만나러 갈 희망으로 깊어진 병의 고통을 힘겹게 견디지만 남편(모하)이 사냥 나간 사이 게르에서 고통스럽게 숨지고, 홀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는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딸을 먼발치에서 바라본다.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한 딸 아가의 두빰에 눈물이 흐른다. 말없이 멀리서 서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화해하는 평화의 메시지와 함께 땅에도 평화의 흰눈이 내린다.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 이 영화는 우리 안에 있는 고요함을 일깨워준다. 이 한편의 영화로 보는 사람의 마음도 참 평안해진다.

때론 순록처럼 의연하게 살아가는 남편과 모든 걸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아내의 무던함에서 조급한 우리세대가 살아가야할 방향을 알러주는 듯하다. 지루한 듯 그러나 잔잔하게 1시간 32분의 시간이 흘러간다. (관객리뷰단 - 박덕희)

밀코 라자로브 감독의 2018년 작 ‘아가’는 스크린을 종횡하는 인물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카메라의 고정된 시선으로 읽혀진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간극 사이를 넘나드는 인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립무원의 설원에서 살아온 인물의 삶을 모두 본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음악이 그들의 삶을 대하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특히 냉혹한 바람 소리만큼이나 차가운 공간을 타고 음악이 흐를 때 우리의 귓속에는 삶의 고통이 오롯이 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연이은 파란 하늘이나 마법같은 순록 이야기 사이로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 소리 또한 아들이 흘리는 한방울 눈물마냥 아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평생을 거처해온 설원 위 안식처는 그들의 지난한 삶의 노정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흘간 아무것도 못 잡았다는 말에 처음있는 일도 아니라고 응수하며 웃는 장면이나, 머리와 수염을 손질하는 부인과 마주한 눈빛, 순록 이야기와 함께 마주하며 이뤄내는 허밍 장면 등은 그 공간을 가득 메운 브라운 톤의 색감과 잘 어우러져 따뜻하기 이를 데 없는 감흥을 자아내고 있었다.​

다큐멘터리적 시선으로 그려진 이 차갑고도 따뜻한 변증법적인 영화는 삶의 지난함과 그 속에 그려지는 포근함, 혼자 남게 된 인물의 무심한 행보에 이은 마지막 장면까지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될 시리도록 아름다운 드라마였다. (관객리뷰단)

2~3개월의 짧은 여름 동안 영도 이상, 겨울철 기온이 영하 50~60도씨, 위도 60도 이상의 고위도, 북극해 주변의 해안 지역과 고산지대에 분포하는 툰드라에서 사는 한 원주민의 이야기. 땅속이 일년 내내 얼어 있어, 농사는 불가능하고, 순록 유목과 물고기 잡이, 바다표범 사냥으로 겨우 생을 이어갈 수 있는 영구 동토층에 깃들어 사는 늙은 아내와 남편의 늘 똑 같은 하루가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들과 딸(아가)는 다이아몬드 광산에 일하러 나가고 두 부부만 남아, 옛날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오늘이 어제같이 내일도 어제같이 그렇게 삶을 이어가고 있다. 오래전 딸 아가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게 부모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하고 부모를 떠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래전 툰드라지역을 누볐던 순록은 이제 보이지 않고, 두껍게 얼어 있는 얼음을 반나절 넘게 깨서 그곳에서 겨우 생선 한 두 마리를, 덫에 걸린 작은 짐승이 무슨 복처럼 잡히면 그것으로 또 몇 날을 살아가며 버티어 가는 두 사람. 그럼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늙은 부부는 한결같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아내는
 딸에게 줄 모자를 짜면서,언젠가 딸 아가를 만나기를 바란다.그리고
 남편도 딸을 용서하기를,그래서 언젠가는 그 딸을 함께 만나러 가게 될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날을 보낸다.그러다 아내는 죽기 전 신비로운 꿈을 꾼 이야기를 남편에게 들려주고,그
 날도 먹을 거리를 구하러 멀리 떠났다 돌아오니 아내는 평화로운 얼굴로 자는 듯이 숨을 거뒀다.

아내의 소망이었던, 딸을 만나러 길을 떠났고,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딸을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영화는 자주 그리고 오래 광활한, 하늘 아래 온통, 눈 뿐인 풍경을 보여준다. 사람은 귀퉁이에 아주 작다. 보는 내내, 저렇게 척박한 땅에도 사람이 사는 구나, 저런 곳에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며 보았다. 더운 여름에 눈만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는 것은 참 신기하고도 믿기지 않은 어떤 것으로 다가왔다.  (관객리뷰단)